채용철학 및 경험담
채용 철학
입사 시험 과제는 디자인, 편집 등과 조율하는 과정을 제외하면 사실상 실제 업무와 동일합니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쓸 내용을 미리 다 정해준 대학교 교양 수업 레포트 작성 업무에 불과합니다만, 전문가 보고서도 아니고 대학교 교양 수업 레포트 정도만 해도 깔끔한 문장으로 작성하는 인력이 한국에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을 지난 몇 년간의 시행착오를 통해 알게 됐습니다. 한국은 구직자에게도 ‘헬 조선’이지만, 채용자에게도 ‘헬 조선’이더군요.
챗GPT로 인력 수요를 대체해보기도 했습니다만, 가짜뉴스가 되지 않도록 정확성을 담보하고, 모국어 사용자인 독자들이 읽기에 깔끔한 문장을 만들어 내는 것은 적절한 인력이 있다는 경험치도 쌓였습니다. 위의 ‘헬 조선’ 경험을 바탕으로 개인 역량에 따라 생산성과 급여 수준이 연동되는 운영 방식을 만들었고, 회사 운영 구조와 유사한 방식으로 채용 절차를 마련했습니다. 회사 운영 방식은 내부 수정을 거듭해, 기자 및 연구원 개개인의 역량에 의존적인 언론사가 아니라, 회사의 역량을 전달할 수 있는 평범한 모국어 사용자들로 운영이 가능한 구조로 변경됐습니다. 혹자들은 컨베이어 벨트식 자동차 생산공정에 쓴 분업/협업 구조를 고급 기사 작성 방식으로 벤치마킹했다고 표현합니다.


생산공정형 운영 방식
저희 The Economy Korea의 생산공정형 운영 방식 예시는 위에 추가한 기사 작업 게시판 이미지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더불어 입사 지원을 위해 과제를 작성하다 보면 지원자 분의 적성과 저희 업무 간의 동기화 정도를 스스로 가늠하실 수 있을 겁니다.
실제 업무를 시작하면 처음 훈련기간에는 3–4시간을 써야 기사 1개를 쓰시던데, 생존하시는 분들은 대체로 점차 시간이 줄어들어 2시간 이내에 쓰시게 됩니다. 빠르게 쓰시는 분 중에는 2시간에 6개의 기사를 쓰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겪은 사건들
대부분의 지원자들이 과제를 제출해야 심사가 진행된다는 공고를 읽지 않았는지 과제 제출 없이 구직 플랫폼에서 자동 생성된 이력서만 보냅니다. 공고 글과 과제 공지 속에 답이 있는 사전 질문을 필수로 넣은 구직 플랫폼에서조차 질문을 무시하고 지원하신 경우도 매우 자주 봅니다.
전직 유명 언론사 기자 출신, 행정고시/외무고시 합격자, 명문대 석·박사 등등 스펙이 뛰어나고 경력이 화려하신 분들도 많습니다만, 과제 제출 없는 지원서는 일괄 무답변으로 대응합니다.
이런 분들을 사업 초기에 스펙과 경력만 믿고 뽑아 봤습니다만, 그간 저희 편집 팀을 실망시키지 않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고, 더 이상은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반면 성실히 과제를 작성해주신 모든 분께는 합·불 여부에 관계없이 내용 이해 부족 여부, 문체의 껄끄러움, 외래어 표기 문제 등등에 대한 저희 견해를 공유하고, 저희 팀이 제안하는 수정본을 보내드리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구글 번역기를 돌린 글, 국내 언론사 기사를 그대로 붙여넣은 경우 등은 역시 무답변으로 대응합니다만, 과제를 위해 시간을 쓰신 것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지키자는 것이 저희의 채용 철학입니다.
예시로 하단에 저희 답변 중 하나를 추가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채용 절차가 지나치게 어렵다, 복잡하다 등의 불평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저희도 이렇게까지 복잡한 절차로 채용을 진행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과제를 정상적으로 써서 제출하는 분도 만나기 쉽지 않고,
업무에 대한 최소한의 양심을 갖추고 있는 분도 드뭅니다. 저희도 실망, 충격, 분노의 경험을 반복적으로 겪으면서
어쩔 수 없이 최소한의 실력 평가, 성실성 평가 절차를 마련했습니다. 역량이 있는 분이면 합계 1시간도 걸리지 않을 과제와 절차인 만큼, 불평하시는 만큼 저희의 고충이 조금이나마 전달됐으면 합니다.
아래는 불합격자에게 보낸 답변 예시입니다
안녕하세요 XXX님,
먼저 바쁘신 와중에 저희 회사의 번역 프리랜서 포지션에 지원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보내주신 과제를 편집 팀에서 여러 차례 돌려봤습니다만,
전반적으로 학생 신문 기고글 같다는 평가로 정리됐습니다.
당장 첫 단락만 봐도 제출하신 과제를 저희는 아래와 같이 바꿔 쓸 것 같습니다.
제출하신 과제
- 영국 사모펀드(Private Equity, PE) 시장에 피바람이 불 예정이다. 영국 노동당이 새롭게 계획한 세금 정책의 우려로 인해 사모펀드 매니저들은 해외 이전을 고려하는 상황이다. 게다가, 다가오는 영국 총선에서 노동당의 승리가 예상되면서 이는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 영국 제1야당인 노동당은 지난 화요일 성명을 통해 “(사모펀드는) 성과급이 자본이익으로 간주되는 유일한 산업”이라며 “이러한 구멍(loophole)을 메꿀 의향이 있다”고 언급하며, 성과보수(carried interest) 등 사모펀드의 보수체계에 대한 세제 개편 의도를 시사했다.
저희 버전
- 주말 예정된 총선에서 영국 노동당의 압도적인 승리가 예상되는 가운데, 노동당의 세금 정책이 가시화될 경우 영국 사모펀드들의 역외 이전 바람이 불 것이라는 예측이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노동당은 그간 사모펀드 수익에 대한 과세 기준을 자본이득세가 아닌 근로 성과 보수에 따른 소득세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을 꾸준히 제기한 바 있다. 영국 역내 수익의 경우 자본이득세는 28%, 소득세는 45%의 세율이 적용된다. 선거를 목전에 둔 지난 목요일에도 같은 주장을 재확인하는 과세 조정 계획을 발표했다.
저희 버전이 반드시 더 고급 문장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만, 전체적으로 개별 문장의 완성도, 단락 연결 등에 조금 더 신경을 썼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제출하신 과제 전반적으로 ‘부과되고 있다’, ‘깊어지고 있다’ 등과 같은 표현이 여러 차례 반복되는데,
서술형이나 완결형이 적절해 보이는 부분들에서도 진행형을 쓰신 탓에 문장 읽기가 조금 불편합니다.
또한 자본이득세율 인상 가능성이 높아진 것인지, 자본이득이 아닌 임금소득으로 과세할 것인지
혼란을 주는 번역도 아쉬웠습니다.
최소 500단어 분량으로 번역이 될 만한 영문 기사가 350단어 내외로 압축되면서 일부 정보에 손실이 있었던 것 같다는 평도 있었습니다. 외신 기자 출신이시면 영문 기업명, 직함 등을 한국어로 표현하는 언론사별 규칙도 접하신 적이 있을 텐데, 영문 명칭이 그대로 들어간 부분도 지적사항 중 하나였습니다.
사소한 템플릿 부분은 향후 성실성으로 보완될 수 있겠지만, 한국어 문장 수준이 단기간에 향상되지 않는 경우를 너무 많이 봐 왔기 때문에, 안타깝지만 XXX님께는 긍정적인 답변을 드리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